임산부 출산체험기 ]43세 초산! 힘 세 번주고 자연분만(노원 지원 김미경 회원님 ♥♥♥출산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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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기가 작디 작은 다섯 손가락으로 내 엄지를 쥐고 있다.
제법 힘이 실려 있다. 뱃 속에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0일을 맞았다. 내 눈 앞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리고 눈을 맞추며 미소를 보낸다. 일상의 삶이 기적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출산 3개월 전부터 임산부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옆구리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하루 가서 옆구리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런지 운동신경이 워낙 둔하기도 하고 운동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 뭘 해도 오래하질 못하던 내가 임산부 요가는 3개월을 꼬박 다녔다.
5층을 숨 가쁘게 오르면 언제나 일일이 회원의 이름을 불러 주며 원장님이 회원들을 맞이한다. 편안한 분위기와 이완을 중시하는 임산부 요가는 내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몸이 잘 쉴 때 복식호흡은 저절로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라웠다. 어렵다면 아기들이 어떻게 복식호흡을 할 수 있겠냐는 말씀이었다.
“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바닥에 몸을 맡기세요.”
“ 자극이 강할수록 한 번 더 이완하세요.”
그 전에 다른 데서는 복식호흡을 하려면 생각하면서 해야 했는데 원장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다보면 저절로 복식호흡이 이루어졌다. 요가를 통해 신체의 이완을 맛보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내 몸이 긴장 상태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요즘도 생활하다가 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요가 덕이다.
임산부는 산부인과에서 많은 검사를 받게 된다. 우리 부부는 무조건 아기를 낳기로 했기에 양수 검사를 안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태중의 아기가 기형아일 확률이 10분의 1이라고 했다.
그날 밤 “장애인의 천국, 캐나다”라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만약에 우리 아이가 기형아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캐나다에 가야겠다는 대책 없는 생각이 오갔다. 한편으로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수중분만을 하고 싶었으나 나이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사선생님 책상에 붙인 인쇄물에 35세부터 고령임산부라고 써 있어서 43세에 자연분만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출산에 임박해서야 자연분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일병원 담당의사는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나이가 많은데 무슨 자연분만이냐고 할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43세에 자연분만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장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연분만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가능한 건지 알 수 없어서. 그러나 임산부 요가를 다니면서 용기를 냈다.
“태초부터 모든 여인들이 하던 일인데 회원님들이라고 못할 것 없다.”
“회원님보다 뱃속의 아기가 더 힘듭니다.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격이라고나 할까? 양수(물) 속에서 생활하다 폐로 호흡해야 하니 그렇다.”
“ 천년의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될 아기, 아기와 함께 하세요.”
최주희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련을 하는 동안 임신 기간의 불편함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자연분만을 하겠다는 마음이 다져졌다. 지인들이 자연분만 해보려다가 끝에 가서 수술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괜한 고생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난 흔들리지 않았다. 아기가 산도를 통해 나오느라 애쓰는 것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의 하나를 통과하는 것을 배우는 거라 생각하며 그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다. 하다가 못하면 할 수 없지만 그건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헛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정일을 4일 앞두고 새벽 1시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생리통처럼 가볍게. 낮에 맑은 물이 세 방울 정도의 양으로 묻어 이슬인가 해서 병원을 다녀왔으나 초산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으니 다시 오라고 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날 밤이었다. 병원 갈 채비를 하고 밥을 먹어야 힘을 쓸 것 같아 아침밥을 짓고 하는 동안 드디어 5분 간격의 진통이 왔다.( 출산 전에 먹으면 안 된다. 수술을 할 수도 있으니까 관장을 시킨다고 한다.)
남편을 깨웠다. 병원에 6시 반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검사를 하고 7시에 분만대기실에 들어갔다. 여전히 자궁이 1Cm밖에 열리지 않았단다.
드디어 11시에 아기를 낳았다. 본격적인 진통은 2시간 정도였다. 진통시간도 짧았다.
2분 간격으로 마지막 진통이 오는 순간 난 이완을 생각했다. 임산부 요가 시간에 배운 대로 “다리를 들고 산도를 열고 이완한다. 고통이 오는 순간 이완하고 힘을 준다.
그야말로 똥 누듯이 힘을 주라.”는 원장님의 말씀대로 힘을 주었다. 요가 시간에 힘 주는 것이 그렇게 되질 않아서 걱정을 했었는데 실전에서는 잘 되었나보다. 10Cm가 열려 분만실에 들어가서는 3번 힘주기 하니까 아기의 울음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정신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애썼다. 엄마가 혼미하면 아기는 너무 힘들다고 해서. 분만대기실에서 시간을 다 보내서 통증이 올 때, 다리를 내가 들어야 했다. 그런데 배에 아기의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것 이 부착되어 있어서 다리 들기도 쉽지 않고 이완도 어려웠다. 남편이 곁에서 지켜주고 다리를 들어주었다. 남편도 고생 많았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함께 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기를 기르는 동안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임산부 요가를 하지 않았다면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고통스런 진통에 정신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국명상요가센터, 최주희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노원지원 김미경
2007.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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