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법,호흡법,명상법 선생님에게 관법을 지도받았는데 일상 속에서 잘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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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64회 작성일 18-01-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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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원 이 란 회원님
선생님에게 관법을 지도받았는데 일상 속에서 잘 안됩니다.

* 원장 윤주영
물론 처음부터 잘될 수는 없죠. 그 까닭은 우리가 늘 경계에 떨어져 자신의 근원은 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종일 잠시라도 안으로 일으키는 모든 생각과 밖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계가 없이 오직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본 순간이 얼마나 됩니까?
혹시 그런 한가한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불안합니다.
마음은 무엇인가를 향해 더듬고 갈피를 못잡듯 혼란스러워집니다.
허전하고 막막해서 견딜 수 없어 무엇인가를 붙들거나 빠지거나 합니다.

* 본원 이 란 회원님
내 자신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 원장 윤주영
그렇지요. 왜냐하면 언제나 희노애락의 감정이나 온갖 지식이나 주의 주장 등과 동일시되어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삼아왔기 때문입니다.
관이라는 것은 일체 경계를 비추는 근원 마음을 잊지 않는 가운데 비추어주는 것입니다.

* 본원 이 란 회원님
왜 단전을 관해줘야 합니까?

* 원장 윤주영
단전을 관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방편입니다. 만약 제가 회원님에게 무조건 관을 잊지 말라고 하면 가뜩이나 많은 경계에 휘둘리는 일상 속에서 관이라는 것은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단전을 관해줄 때에는 관하는 그 마음이 또렷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관하는 그 마음이 또렷한 가운데 일체 경계를 응하게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단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전을 관하면서 관하는 마음이 또렷한 가운데 일체 때, 일체 경계에 응하면 됩니다.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또 상대의 말에 응해 대답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관하는 마음 그 자체에 뜻이 있어서 한시도 관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애매하게 느껴지더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쉽게 경계나 희노애락의 감정에 떨어지지 않고 일체에 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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